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람보르기니 쿤타치 (문단 편집) == 개요 == ||[[파일:쿤타치 LP500 프로토타입1.jpg|width=100%]]||[[파일:쿤타치 LP500 프로토타입2.jpg|width=100%]]|| |||| LP500 프로토타입 || ||[[파일:attachment/lmaborginiCountachlp400.jpg|width=100%]]||[[파일:lamborghini_countach_lp400.jpg|width=100%]]|| |||| LP400 || [[람보르기니]]가 생산했던 V12 미드십 [[슈퍼카]]. [[람보르기니 미우라|미우라]]의 후속작이며, 람보르기니의 두 번째 기함이자 플래그십 모델이다. 현재 플래그십인 [[람보르기니 레부엘토|레부엘토]]의 고조할아버지격 모델. 1971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최초 공개되었고, 1974년부터 양산에 돌입하여 1990년까지 총 16년간 생산되었다. 람보르기니 플래그십 슈퍼카의 특징인 [[시저 도어]]가 최초로 적용되었으며, 플래그십 중에는 최초로 [[리트럭터블 라이트]]도 장착했다. 당시 [[그루포 베르토네]]에 근무했던 마르첼로 간디니[* 람보르기니 미우라도 디자인]가 디자인했다. 곡선의 아름다움이 살아있던 미우라는 반대로 공격적인 직선 위주의 스타일을 가진 것이 특징이다. 심지어 직선미를 살리기 위해 창문조차 곡면이 거의 들어가지 않은 완전 평면에 가까운 사양이 적용되었을 정도다. 차체 노즈가 극단적으로 낮은 반면 좌우로는 넓어 상당히 납작해 보이는 것도 눈에 띄는 부분. 1971년의 제네바 모터쇼에 처음 공개된 뒤, 마치 SF 영화의 우주선이 연상되는 그 획기적인 디자인으로 세간에 큰 충격을 던졌다. 쿤타치에 의해 확립된 일명 '''쐐기형''' 이라 불리는 람보르기니 고유의 디자인 아이덴티티는 쿤타치 이후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후 모든 슈퍼카의 디자인은 '전위적이어야 한다' 는 강박증과 각종 고정관념이 생길 정도이니 50년 전인 1971년 당시 쿤타치가 얼마나 혁신적인 차였는지는 더이상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슈퍼카는 당연히 이렇게 생겨야 한다는 식. 또 그렇지 않으면 슈퍼카를 살 이유가 없다.] 기술적 측면에서는 미우라와는 달리 엔진을 세로배치한 것이 가장 큰 특징. 이름의 'LP' 부터가 '세로 배치'(Longitudinale Posteriore)의 줄임말이다. 1971년 제네바에 출품된 LP500 프로토타입은 5.0L엔진을 탑재하도록 설계됐으나, 1974년부터 판매된 최초 양산형인 LP400은 미우라와 같은 V12 4.0L 엔진이 탑재되었다.[* 당시 [[람보르기니]]는 자금난 등 여러 가지 문제를 겪고 있었기 때문에 5.0L 엔진을 바로 양산할 수 없는 처지였다.] 다행히 LP400이 나름 수익을 창출해서 개량형 쿤타치를 내놓을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배기량을 늘린 5.0L 엔진과 LP5000 QV에 이르러서는 5.2L 엔진까지 개발했다. 이름부터가 상당히 도발적이고 과격하다. Countach의 어원인 쿤타크(Cuntacc 또는 Contacc)는 피에몬테 방언으로 "전염병" 을 뜻하며, 속어로는 "젠장!", "썅!" 정도로 볼 수 있다.[* 질병과 관련된 단어를 감탄사나 욕설로 사용하는 예는 많다. 폴란드의 [[콜레라|Cholera]]와 한국의 [[지랄]], [[염병]]을 떠올려보자. --람보르기니 지랄염병--] LP500이 처음 공개되던 당시 청중에서 감탄사로 터져나온 비속어가 그대로 이름으로 차용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파일:attachment/lmaborginiCountachlp500s.jpg|width=100%]]||[[파일:lamborghini_countach_lp5000_qv.jpg|width=100%]]|| || 후기형인 LP500S. 범퍼의 디자인이 바뀌었다.[* 뒤에 달려있는 [[스포일러(동음이의어)|스포일러(윙)]]는 한때 "Hyundai Wing(현대 윙)"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는데, Hyundai는 그 [[현대자동차|현대차]] 맞다. 스포일러 옵션을 추가하는 비용이 당시 현대가 수출했던 [[현대 엑셀|포니 엑셀]]의 신차 가격과 거의 같다는 점이 이 독특한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 후술하겠지만 이 윙을 추가하면 가뜩이나 좁은 후방 시야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감소해버리는데,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법률이 완화되어 있던 그 당시에도 이런 윙이 달린 자동차를 판매하는 것은 불법이었다. 그래서 람보르기니에서는 윙이 없는 순정 상태로 차를 출고한 뒤, 딜러샵에서 고객에게 차를 판매한 직후 그 자리에서 직접 윙을 추가해 달아주는 꼼수를 썼다.] || LP5000 QV[* '''Q'''uattro'''v'''alvole.] || ||[[파일:lamborghini_countach_25th_anniversario_1.jpg|width=100%]]||[[파일:lamborghini_countach_25th_anniversario_2.jpg|width=100%]]|| |||| 25주년 기념 모델, 공기흡입구가 바뀐 것이 눈에 띈다.[* 훗날 25주년 기념 모델을 디자인한 어느 한 [[호라치오 파가니|디자이너]]는 람보르기니를 퇴사하고 '''[[파가니|자신의 이름을 내건 슈퍼카 회사]]'''를 설립한다.] || 무려 2,042대나 생산되면서 꾸준히 개량됐기 때문에 여러 형태가 있다. 그 중 후기형인 LP5000 QV[* 1985~1987년 생산분.]와 25주년 기념 모델[* 1988~1990년 생산분.]이 각각 675대와 650대로 가장 많이 생산됐는데, 이는 쿤타치의 전체 생산량 중에 반 이상을 차지한다. 그러나 단종 이후 세월이 많이 지난 만큼, 오늘날 쿤타치의 시세는 전 세대에 걸쳐 가파르게 상승 중이다. 25주년 기념 모델의 경우, 최근 자동차 전문 경매사인 RMSotherby’s 에서 치러진 두 번의 경매에서 연속으로 75만~80만 달러에 낙찰되었다. 이는 한화로 10억을 뛰어넘는 금액이다. 공개 당시부터 미우라에 이어서 [[가장 빠른 양산차]] 타이틀을 1984년까지 유지했다. 그 이후는 1987년까지 개량형을 통해 1984년에 등장한 [[페라리 288 GTO]], 1986년에 등장한 [[포르쉐 959]]와 타이틀을 놓고 경쟁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